어쩌다 보니 토론토

2005년 1월 13일 이였어. 토론토에 랜딩한 날. 우리가 이민이라는 걸 가게 될꺼라고는 한번도 생각해 본적이 없었는데.. 정말 어쩌다 보니 토론토였네.

아들이 7살, 딸이 5살. (아들은 Gr 2 , 딸은 S K.) 한국에서 아들은 초등학교 1학년을 마치고, 딸은 유치원을 다니다가 토론토 로 왔어. 남편은 장남 이였어 우리는 주일마다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리고 바로 시댁으로 가서 점심, 저녁을 다 먹고 집으로 왔지. 아이들 둘 키울 때는 여러명이 같이 있는게 좋으니까 그게 싫다 좋다 그런 느낌도 없었던 거 같아. 아들이 처음 초등학교 입학하고 담임 선생님 상담을 갔을 때 내가 했던 말이 뭐 였는지 알아? ” 선생님 커텐 빨아 올까요? ” ㅋㅋㅋ 선배 학부모들의 팁을 받고 꺼낸 말이 ㅋㅋ 고작 커텐 세탁. 그 이후에도 방과후 청소, 급식, 소풍 때 도시락 등등 그리고 학원 부터 엄마들의 그룹만들기 까지… 내가 이민을 찬성한 가장 큰 원인은 아마도 아이들 교육 이였던 거 같아.

울 신랑은 미국에서 대학교를 다녔고 한국에서도 무역업을 했던 터라 그 당시 유행했던 독립이민 자격을 쉽게 얻을 수 있었어. 초등학교 동창회에 갔다가 우연히 캐나다에 이민 간 친구를 만났는데 그 친구가 너도 한번 지원해봐. 라는 말에 점수를 넣어봤더니 독립이민 신청이 가능했던 거지. 일단 나에게 캐나다 이민에 대해 물어봤고 나는 아무 생각없이 아이들 생각하면 가는 게 좋을 꺼 같다고 동의했어. 그렇지만 양가 부모님의 허락을 구하는게 가장 어려운 일 이였어. 온 가족이 모여서 식사하던 자리에서 아버님이 너희들은 왜 아무도 나가서 살 생각을 안하니? 라고 툭 던지신 거야. 아마도 교회에서 다른 분들이 여름이나 겨울마다 해외에 있는 자식들 방문하는 게 좋아 보이기도 하셨고 , 좀 더 넓은 세상에서 살 수 있는 기회가 있는데 한국에 있는 것이 안타까우 셨던 것도 같고. 아무튼 남편이 덥석 물었지 ” 저희 나가도 되요? ” 근데 지나고 보면 부모님들도 우리의 이민에 대해 준비가 되어있다거나 진심으로 생각하셨던 건 아니 였던 거 같아.

스치듯 허락을 받고 그 때부터 본격적으로 이민 신청에 돌입했지. 그당시에 독립이민이 많이 유행이였고 이민공사? 를 통해서 하면 수수료가 엄청 나던 때였어. 우연히 머피의 캐나다 이민 을 통해서 정보도 많이 받고 이민 신청을 했고 1-2년 정도 걸린다고 했었는데 우리는 운 좋게도 거의 6-7개월 만에 캐나다 영주권을 받을 수 있게 되었지. 그 다음 문제는 우리가 이민에 대한 준비가 하나도 되어 있지 않았던 거야 ㅋㅋ 이민 가서 무엇을 할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그런 계획이 전혀 세워지지 않았어. 지금 생각하면 정말 용감했지? 그 당시에는 캐나다도 이민자에 대해 오픈했던 상태였고 특히 IT 기술자들이 많이 필요했던 때라 독립이민이라는 것이 생겼던 거 같아. 독립이민은 말 그대로 어떤 조건만 충족되서 점수가 몇점 이상이 되면 아무 조건 없이 영주권을 줬던 때야. 어렴풋한 기억으로 나이,학력,영어실력, 캐나다에 친척이 있는지, 어느 분야에서 일했는지 등이였던 거 같아. 남편이 주 신청자였고 내가 점수에 도움을 준 건 대학졸업장 하나였어 ㅎㅎ 신체검사도 했었는데 한국 사람들이 많이 재심이나 탈락을 했던 이유는 폐렴 흔적이야. 전염병? 보균자로 구분을 해서 그 부분에 가장 신경이 많이 쓰이더라. 한국사람들은 본인도 모르게 폐렴을 살짝 앓고 지난간 사람들이 간혹 있고 그 자국이 폐에 남아있는데 살면서 아무 증상 없으니까 모르고 살았던 흔적이 어이없게 발목을 잡기도 하더라. 암튼 우리 가족은 별다른 장애물 없이 너무 쉽게 영주권을 받은 케이스야.

운 좋게도 토론토에는 시 이모님이 계셨어. 남편은 혼자서 토론토 이모 댁에 머물면서 현지 상황 파악도 하고 우리가 가면 지낼 콘도도 알아보면서 임시랜딩을 하고 왔어. 처음에는 놀스욕 이라는 한인 밀집 지역에 거취를 알아보고 있었는데 결국은 내 친한친구가 이토비코라는 지역에 살고 있어서 그쪽으로 콘도 계약을 했지. 지나고 보면 우리는 너무 편하게 이민을 오긴 했어. 이삿짐도 2달 정도 먼저 미리 선편으로 보내서 우리가 도착할 때는 아이들과 머물 숙소도 우리 짐도 다 해결이 되어 있었거든 . 심지어 이모가 콘도 냉장고도 채워주셨고 생활에 필요한 물품들도 친구가 미리 준비해 준 덕에 꼭 여행을 간 느낌이였어. 나중에 만난 사람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처음에 도착해서 임시 숙소 머물면서 서러움도 당하고, 콘도나 아파트 계약할 때 보증인이 없어서 어려움도 많이 겪고 그랬더라고. 참, 그건 알지? 한국식 아파트를 여기서는 콘도라고 말해. 콘도는 각 유닛마다 주인이 따로 있어서 매매나 월세를 주고 아파트는 회사에서 소유하면서 관리하는 개념이야. 아파트는 세탁기가 집마다 있는게 아니라 지하에 공동으로 있어.

남편이 콘도까지 계약해 놓고 들어와서 온 가족이 탈 비행기표까지 예매해 놓았는데 아빠 상태가 급격히 안 좋아지기 시작했어. 대장암으로 수술하시고 회복하셨다가 간으로 전이되어서 항암치료 받고 계셨었거든. 지금 생각해 보면 내 생각만 했던 거 같아.. 아빠가 꼭 가야 겠냐고 물어봤을 때도 아무 고민이 없었거든 ㅠㅠ 친정 부모님은 늘 너네가 잘 살면 된다 였으니까. 2004년 겨울 점점 안 좋아져서 병원에 입원 하셨고 그때는 더이상 손 쓸 상태가 아니라고 통증치료만 하고 있었어. 어떻게 될 지 몰라서 비행기표를 연기해 놓고 있었는데 병실에 가면 내가 늘 질질 울고 다니니까. 아빠가 울꺼면 오지 말라고 했던 게 마지막 이였네.. 장례식까지 치르고 얼마 있지 않고 난 캐나다로 와버렸어. 엄마한테 정말 미안하더라. 딸이라고 하나있는게 정작 해 드린게 아무것도 없었으니까. 시댁도 마찬가지야 이별에 대해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는데 막상 비행기탈 시간이 가까워 오니까 모두들 허둥지둥 . 마지막 인사를 하러 시댁에 갔는데 아버님이 외출을 해 버리시더라. 그리고 공항에서 마지막 통화. 니가 내 옆을 떠날 꺼라고는 한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때는 남편도 울컥 눈시울이 벌게졌어. 그리고 큰아이 5개월 때쯤 아파트 단지에서 만나서 쭈욱 가족처럼 지냈던 언니들까지. 이민은 여행이 아니더라. 익숙하게 살아왔던 모든 것들과의 이별이 시작이야. 사랑하고 사랑받으며 생활했던 모든 것들과의 이별. 낯선 곳에 대한 설레임과 두려움으로 그 생이별의 아픔을 덮어 버렸어. 그래서 떠난 사람들보다 남겨진 사람들이 더 힘든 게 사실 인 거 같아. 그치만 시간이 지날 수록 그들은 적응을 해서 떠난 사람들에 대한 그리움이 점점 줄어들지만, 떠난 사람들은 불안함이 안정으로 바뀌면서 잊혀졌던 그리움들이 점점 더 살아나서 무섭게 성장해 버려. 결론적으로 그들은 잊고 지내지만 우리는 점점 더 그리워하게 되는 거지. 부모님이나 가족들한테는 이민자들은 늘 죄인이야. 요즘은 어떤지 잘 모르겠어 적어도 나 때는 ㅋㅋ 그랬다는 거지.

다음 편에서는 본격적으로 토론토 바닥을 구르고 부딪히며 겪었던 정착 분투기(차 구입, LINC 테스트, 그리고 추억의 쌀국수 이야기)로 찾아올께

혹시 2004년부터 2005년의 상황에 대해 좀더 실제적인 정보가 궁금할 수도 있을 꺼 같아서 다음글들을 남겨볼께요

MapleBucky의 ‘라떼’ 이민 비하인드 (2004~2005 토론토 추억 소환)

글을 쓰다 보니 문득 20년 전 그 시절, 우리가 통과해 온 캐나다 이민 제도와 토론토의 풍경은 어땠는지 새삼 기억이 떠올라 몇 가지 보따리를 더 풀어볼까 해요. 요즘 이민을 준비하시는 분들이 보면 “정말 그런 시절이 있었어?” 하실지도 모르겠네요.

🇨🇦 67점만 넘으면 영주권을 주던 ‘독립이민(FSW)’ 시절

지금은 ‘Express Entry’라고 해서 신청자들끼리 점수 경쟁을 벌여 고득점자순으로 끊지만, 2004년 당시 독립이민은 정부가 정한 합격 커트라인(Pass Mark)인 67점만 넘기면 결격사유가 없는 한 순서대로 영주권을 주던 시절이었어요.

  • 종이 서류와 우편 접수: 모든 서류를 종이로 출력해 우편으로 보내고 마냥 기다려야 했죠. 보통 1~2년은 기본으로 걸리던 때였는데, 저희는 정말 운이 좋게 6~7개월 만에 프로세싱이 끝났으니 대사관에 감사해야 할 일이었네요.
  • 한국인들을 긴장시켰던 ‘폐렴 흔적’: 영주권 신체검사 단계에서 한국 신청자들이 가장 가슴 졸였던 부분이 바로 ‘폐 가슴 엑스레이’였어요. 한국인들은 자신도 모르게 감기처럼 폐렴을 살짝 앓고 지나간 경우가 많은데, 폐에 남은 그 미세한 흔적(정착된 흉터) 때문에 전염성 결핵 보균자 오인을 받아 재심이 뜨거나 탈락하는 사례가 종종 있어 다들 조마조마했었답니다.

🏢 토론토의 콘도(Condo)와 아파트(Apartment)

글에서도 살짝 언급했지만, 캐나다에 처음 오면 한국과 다른 주거 개념에 조금 헷갈리기도 합니다.

  • 콘도(Condo): 한국의 일반적인 분양 아파트와 같아요. 유닛마다 개별 주인이 있고, 건물 내에 수영장이나 헬스장 같은 편의시설이 잘 갖춰져 있죠. 당시 저희가 정착했던 이토비코(Etobicoke)나 한인들이 많던 노스욕(North York) 일대의 콘도 매매가는 놀랍게도 20만 달러 안팎이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때 사둔 콘도를 지금까지 가지고 있었어야 했는데 말이죠! ㅎㅎ)
  • 아파트(Apartment): 캐나다에서 ‘아파트’는 개인이 분양받는 게 아니라, 거대 주택 관리 회사가 건물 전체를 소유하고 오직 ‘렌트(월세)’로만 운영하는 건물을 뜻해요. 그래서 집집마다 세탁기가 없고 지하 공동 세탁실에 코인을 넣고 빨래를 해야 하는 문화가 기본이었답니다. 보증인이 없는 초기 이민자들은 이 아파트나 콘도 계약을 할 때 디포짓(보증금)을 몇 달 치씩 선납해야 하는 설움을 겪기도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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